Golden WebTalk2008. 2. 10. 18:19
한겨레] 주부들을 위한 자기계발서가 뜨고 있다. 주부는 가정의 시이오(CEO)라며 ‘주부 이력서’를 쓰라고 주장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착한 여자 대신 당당한 여자가 되라” “이제 도마 대신 노트북을 두들겨라”고 외친다. 남편과 아이들의 꿈만 이뤄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꿈과 소중함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아줌마 자기계발서’ 출판 흐름은 이제 시작이다. <원더풀 라이프-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위한 희망 보고서> <아줌마 리더십>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당당한 아줌마로 거듭나라> 등이 지난해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올해 초 한때 교보문고 기준 비소설분야 6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여성용 자기 계발서는 주로 20~30대 직장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전업주부를 위한 책들은 본인보다는 주로 자식을 어떻게 뒷바라지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그렇지 않으면 몇몇 유명한 여성들의 성공담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에 가까웠다.

한국여성정책개발원의 이미정 연구위원은 “60대가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닌 시대다.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일과 결혼을 동시에 선택하는 게 불가능했던 지금의 40~50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시기”라며 “환영할 만한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아줌마를 겨냥한 자기계발서 출판 흐름은, 달라진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 중년인 40~50대는 더 이상 노년기를 준비하는 안정적인 징검다리가 아니다. 노후대책도 세우지 못했는데, 남편은 일찍 은퇴하고 아이는 대학원에 진학한다. 전업주부였던 여성들은 생계부양자로서의 위치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원더풀 라이프…>의 저자인 소광숙씨는 “40대쯤 되면 경제적·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될 시기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심리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겪는 시기”라고 말한다. “중년 여성에게는 삶과 나이듦에 대한 대안이 될 역할 모델이 없고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요. ‘중년의 사춘기’를 맞아 중년의 욕구를 읽어주는 책들이 호응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서 들여다보니

■ 가계부가 아니라 시이오 다이어리를 써라

이러한 책들은 아줌마는 ‘한 가정의 경영자’라는 공통된 시각을 담고 있다. 희생정신에 입각한 리더십, 철저한 재무관리, 성별·나이·취미도 각기 다른 다양한 가족으로부터의 요구를 듣고 각자에게 적합한 가정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답게 행동하자고 말한다.

■ 주부도 퇴근 시간을 가져라

주부도 퇴근 시간을 정하고, 가게 문 닫듯이 문을 닫아야 한다. 가정은 남편이나 자녀에게는 휴식의 장소이지만, 아줌마들의 입장에서는 가사노동의 장소다. 퇴근 없이 24시간 노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부가 24시간 편의점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가정 안에서도 퇴근 시간을 정해놓고 아이들 스스로 자기관리를 하고, 남편도 아이숙제를 함께 봐주거나 집안일을 하게끔 하라.

■ 하루에 한 시간씩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라

주부에게는 24시간 중 몇 시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위임과 양도로 살림을 효율적으로 경영할 필요가 있다. 자기계발에 들이는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필요없는 낭비를 줄이는 대신 적절한 소비로 더 중요한 일을 위해 투자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 남편과 아이에게 노후에 기대지 말라

아줌마 자기계발서는 하나같이 경제력을 강조한다. ‘연금보험이 열 아들 안 부럽다’며 노후 재테크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취업준비에는 경력개발도 필수다. 경력단절 주부층을 위한 정부기관 취업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 집안일은 요일별로 몰아서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다. 밑반찬 만들기는 화요일, 빨래는 수요일, 장보기는 목요일, 다림질은 금요일 등으로 정하고 몰아서 하는 습관을 들인다. 냉장고 문에 항상 메모지를 붙여두고 살 것을 적어두면, 시간도 절약되고 충동구매도 줄일 수 있다. 걸레는 한꺼번에 모아서 세탁기로 돌린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267012.html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2. 2. 07:12

워낙 인기가 없는 곳이다 보니 다른 블로거들이 자랑하는 구글로부터의 수표와 액수자랑은 먼나라 이웃나라 쯤으로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안 달자니 썰렁해서 구글애드센스를 한개 달아놓았던 때가 2007년 하반기였다

오늘 구글 애드센스로부터 안내 메일이 왔다
내 블로그에도 수익이 발생한 것이 재미도 있고 흥미로웠다.
액수를 확인하러 모처럼 구글싸이트로 가보니~ 흐~~~
액수는 말 못함*^^*

학생들이 왜 광고에 열을 올리는지 이해가 갔다.
적은 액수나마 돈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나.
블로그에서 수입을 올리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수입은 장기적으로 보아야지
내용도 없는 퍼오기 식의 글로 순간적인 방문자수를 늘리는 반짝 수입의 기쁨은 말 그대로 반짝기쁨일 것이다. 노력없는 결과가 어디있겠나.

나도 여기저기 좌우사방 광고로 도배해봐?
참자!
그런데 이거 정말 돈을 준다는 메일인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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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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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27. 22:19


사람잡는 "카더라"… '인터넷 선무당' 굿판 치워라

한국일보|기사입력 2008-01-27 19:18 기사원문보기
나훈아 괴담으로 드러난 '소문 공화국' 현주소

네티즌 무책임한 댓글이 소문을 확대·재생산해

"시민들도 사실 전달하는 '작은 기자' 역할해야"

인터넷을 통한 ‘괴담’수준의 소문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대 재생산되는 것일까. 가수 나훈아(61ㆍ본명 최홍기)씨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격한 심경을 토로하며 자신과 관련된 괴담을 유포한 언론과 네티즌들을 강도높게 비난하자 인터넷 괴담의 생산ㆍ유통에 대한 점검과 적절한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나씨 관련 소문이 확산되는 데는 최근 인터넷의 새 풍속으로 자리잡은 ‘연예인 신원 찾아내기’가 주된 역할을 했다. ‘사이버 탐정’을 자처하는 일부 네티즌들의 추론이 수만 건에 이르는 조회수와 댓글, 이후 언론 보도로 이어지며 ‘나훈아 괴담’을 만들어갔다.

‘나훈아 괴담’의 경우 2006년 10월 한 스포츠 일간지의 한 연예인 이혼 기사가 인터넷 포털에 실리면서 시작됐다. ‘개그맨 A씨가 전처 B씨와 헤어진 것이 가수 C때문’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뜨자 네티즌들은 ‘디너쇼를 여는 가수 C씨’후보 3, 4명을 추렸다. 기준은 이니셜 성(姓) C. 하지만 이 때만 해도 나씨는 후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사이버 공간의 숨은 힘은 2007년 4월 ‘나씨가 불분명한 이유로 콘서트를 취소했다’는 연예지 기사와 여성지에 보도된 A씨의 추가 고백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이즈음 인터넷에서는 C씨 이름 뒤에 나훈아를 병기한 관련 기사 스크랩까지 떠돌기 시작했다.

‘사람 찾기’ 가 일종의 ‘사이버 놀이’화 하고, 언론 등도 검증 없이 이를 보도하면서 소문을 확대ㆍ재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단계에서 본인이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자 루머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나훈아 괴담’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유명 여자 연예인 K씨와 일본 야쿠자가 얽힌 스캔들 등 일부 연예 담당 기자들의 블로그에 오른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과 접합하면서 사상 최악의 루머로 변질됐다.

강도 더해가는 '소문 공화국'

이 같은 ‘사이버 선무당’들의 인터넷 연예인 사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초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배우 S씨 마약 복용 의혹’ ‘탤런트 O씨 전 여자친구 자살’ 사건은 진위을 떠나 당사자에겐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례였다.

당시 인터넷에서 불과 3, 4시간만에 S씨로 지목된 배우 신하균은 직접 경찰에 출석, 두 차례 마약 검사를 받고 나서야 마녀 사냥의 멍에를 벗을 수 있었다. 탤런트 오지호는 O씨가 자신이라는 인터넷 소문을 부인하다 끝내 기사 내용을 시인하면서 네티즌들에게 “가슴 아픈 과거를 흥미거리로 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소문 공화국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방치되는 댓글’을 들고 있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연예 관련 언론이 중계식 보도를 해 논란을 키운 데다, 네티즌들의 무책임한 ‘카더라’ 댓글이 무차별 전파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나훈아 사건은 이런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부작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우로, 외국 언론처럼 기사별 댓글을 없애던가 최소한 포털업체의 엄격한 댓글 검증제 도입이 필수적”이라며 “1인 미디어 시대에 시민들도 사실 전달이라는 책무가 강조되는 ‘작은 기자’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01/h2008012719130221950.htm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27. 09:21

여기오기까지 속마음이 시리고 아팠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해명을 한다는데, 해명은 어떤 사건이 문제됐을 때 밝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해명입니다. 저는 한 게 없기 때문에 해명을 할 게 없습니다.

해명은 확실치 않은 얘기를 실제 근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도를 한 기자나 언론에서 해명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절대 이런 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 안 하려고 했는지 얘기하며 말하겠습니다.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기자 여러분, 만약에 40살이 되지 않은 분들은 제가 노래를 시작할 때 태어나지 않은 분들입니다. 40살이 조금 지난 분들은 아장아장 걸음을 걸을 때입니다. 40년을 했기 때문에 대우를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언론에서 대우 정서가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대우하라는 건 아닙니다. 기사를 다룰 때는 적어도 신중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더 알아보고 더 챙겨보고, 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은 어디로 가 있고 엉뚱한 얘기들만 하나부터 열까지 난무하는지.

만약 이런 식이면 뭐하러 목숨을 담보로 현장에 가서 진실을 담보로 죽기까지 하는 기자들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뭘 써 갖고 나온 것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얘기 중에 두서가 없거나 말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주십시오. 끝까지 질문하지 마시고 오늘은 제가 얘기하는 자리이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테니 여러분은 끝까지 들을 책임이 있는 분들입니다. 나는 어디 소문난 것 듣기만 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만약 '나는 다른 사람이 썼기 때문에 좇아 쓴 것뿐이야'라고 하면 방조자입니다. '나는 한 줄도 안 썼어'라면 방관자입니다. 적어도 말도 안되는 억측을 써내려 갈 때는 대한민국 언론 중 하나라도 신중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나왔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안 나오려 했습니다. 유독 이 연예계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선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을 조목조목 따지며 얘기하겠습니다. 얘기를 하기 전에 미리 말씀 드릴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과 진행과 끝이 있습니다. 중간 토막만 잘라 얘기하면 어떤 결론이 나오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맞아서 길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걸 봤다면 사람들은 '참 안됐다, 누가 저걸 때렸어, 저거 때린 놈 참 나쁜 놈이야' 했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두들겨 맞은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폭행하고 자기 어머니를 때리고 이 세상에 못된 짓을 다한 사람이라면 '아이고 잘 맞았다' 하겠죠. 앞뒤 무 자르듯이 말씀 드릴 순 없고 먼저 두 가지 설명을 하겠습니다.

하나는 공연을 할 때는 내일 공연하니 오늘 하자 해서 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4~5개월 전에 준비를 마쳐야 공연이 가능합니다. 다시 풀어 말씀드리면 공연장소를 계약하는데 한두 달 전에는 계약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게 1년 전 아니면 5~6개월 전 준비돼야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면 알아두십시오.

두 번째, 저는 40년을 노래했습니다. 제가 공연을 할 때는 표가 없습니다. 표를 구하려 해도 표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입니다. 이렇게 40년 오기까지는 저 나름대로 느끼는 '꼭 이렇게 해야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박수를 쳐줄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개인 생각입니다.

40년 노래한 저로서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공연할 수 있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제 공연을 구경왔을 때 기대를 하게 만든 건 저이기 때문에 오신 분들과 무언의 약속이죠. 그래서 절대 온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공연하는 것이 바로 약속입니다.

두 번째,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란 말은 우리처럼 긴 세월을 노래하면 노래를 쉽게 잘하는 법을 압니다. 처음에는 안 그러다 세월 가면 박자를 늘렸다 줄였다 하죠. 이걸 오시는 분들이 다 안다는 겁니다. 무대에서 거짓말 하지 말고 노래해야 하고 무대 전체를 거짓 없이 해야합니다. 그러면 땀이 나게 돼 있습니다. 무대에서 땀을 댓 바가지를 흘리더라도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건 하자고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꿈입니다. 저희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무대에서 공연할 때 몇 억씩 하는 조명이 수십 대가 달려있습니다. 무대 출연진 누구나 보통 거리에선 입지 못할 멋진 옷을 입습니다. 막이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그 무대는 꿈이어야 합니다. 두 시간 이상을 혼자서 끌어가기엔 이 꿈이 없으면 힘듭니다. 저는 연습, 무대 감독, 출연, 세 가지를 꼭 합니다. 그래서 꿈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매년 공연을 똑같이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꾸려면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정도의 무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꿈이 필요합니다. 제가 꿈을 팔려면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을 어디서 충족하느냐, 꿈 얘기는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지금껏 노래해 오면서 한 5~6년 전부터 꿈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기 시작했습니다. 꿈이 고갈된 느낌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갖고 있었습니다.

4년 전, 늘 그래왔던 것처럼 1년 죽 공연하다 12월31일 공연 끝내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내년에는 나 어떡하지, 어떻게 공연을 또 할 수 있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우리 스태프, 식구들 모두 앉아서 파티를 합니다. 마지막 날은 좀 크게 합니다. 그때 제가 얘기했습니다. '오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가 겁이 났다. 우리 겸손하자'고요. 가는 데마다 표가 없지요, 가는 데마다 관객도 젊어져서, 관객의 박수가 이게 꼭 젊은 가수의 공연처럼 되다보니 우리 스태프들이 좀 경거망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겸손하자는 얘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했습니다. 물론 아까 나온 사람(아라기획 대표)에게도 '한 발짝만 다른 사람보다 뒤에 서자, 겸손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1~2월에는 인솔 하에 스태프 장들을 외국에 보냅니다. 제가 하는 말은 가서 뭔가 건져오고 느끼고 오라는 거지요. 이건 무슨 얘기냐, 꿈입니다. 우리 스태프도 꿈을 갖고 있어야 한마음이 됩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세종문화회관 별안간 취소하고 펑크를 내고 돈까지 물어줘가면서 공연을 취소했다는 것 이 얘기부터가 웃기는 얘기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을 돌연 취소했으면 세종문화회관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문제가 생겨야 합니다. 왜 하필이면 세종문화회관만 그렇냐. 난 세종문화회관 잡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작년 초 얘기죠. 제작년에 다음 해에 공연은 잡지 말라고 미리 얘기했기 때문에 잡혀 있어선 안됩니다. 그런데 공연기획사 측에서 세종문화회관을 잡아놓고 '잡기가 까다로운 곳이니 혹시 마음이 변해서 (내가) 하지 않을까' 잡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몰랐습니다. 

기자가 기획사만 만났으면 이 문제는 제대로 밝혀지는 것입니다. (기자가) 발품을 팔지 않고 가고 싶은 데로만 간 것입니다. 그러더니 회사 문을 닫았답니다. 제가 뭘 못할 때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 회사입니다. 내가 쉴 때 같이 쉬어야 하는 회사입니다. 이걸 그런 식으로 몰고갔습니다. 그러더니 잠적했다, 잠행했다. 행방이 묘연하다는 식의 단어를 써가면서 여기저기서 잠적했다는 것입니다.

잠적했다는 소리가 나온 그날, 신문ㆍ방송에 이 말이 나오는 날 저는 우리 스태프와 휴가를 가고 있었습니다. (나훈아가 "휴가 갔다 온 사람 있습니까?"라고 묻자 스태프가 "네"라고 대답했다)

거기서 TV를 켰더니 나훈아 잠적, 스태프들이 "왜 저러는 겁니까"라길래 딱 한마디 했습니다. "놔두라"고. 말 같지 않으니까. 이 연예계 바닥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긁어놓고 네티즌을 들끓게 만들고 이거 누가 하는 겁니까. 네티즌도 나쁘지만 부추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까 제가 꿈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늘 해마다 공연이 끝나고 꿈을 가슴에 채우러 1~2월에 외국에 가서 좋은 공연도 보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 가슴 찡한 것도 보면서 그렇게 꿈을 담습니다. 가슴이 마르면 안되니까요. 꿈이 가득할 때 좋은 가삿말, 곡도 만들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알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껏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꿈입니다. 그렇게 해왔는데 이렇게 왜 금년에는 쉬게 됐느냐. '아 이거는 아니다. 무슨 획기적으로 변화가 있어야지' 만약 관객 속에서 이제 조금 지겨운 거 한다는 소리 나오면 늦습니다. 그러기 전에 다시 꿈을 채워야 합니다. 내가 획기적으로 바꿔 공연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습니다.

한국 깊은 산골짜기를 찾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라도 남원에서 뱀사골로 뱀사골에서 경상도까지 산속을 걸어갔습니다. 사람이 오면 없는 쪽으로 모자 쓰고 얼굴 가리고. 주의 깊은 분들은 내 얼굴을 알아봤습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개울도 만나고 제일 힘들었던 게 식사였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실 것 같은 아무도 없는 식당에 들어갔죠.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굶은 적도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할머니가 '따뜻한 국 더 드시라'고 갖다줄 때 가슴에 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삼척, 춘천, 강릉 옛길, 옛 선비들이 한양을 갈 때 걸어간 길, 그 길로 서울 근처까지 걸어왔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걷지 않던 사람이 그렇게 걸으니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문에 남의 마누라 빠앗아서 가정파괴범, 실제는 물론이고 꿈에라도 남의 마누라를 탐하는 마음이 눈곱만큼만 있었더라도 여러분의 집에 키우는 개××입니다. 혹시 집에 개 없는 사람은 옆집 개, 건넛집 개라도 좋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엄연히 간통죄가 있는 법치국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법적으로 벌써 문제가 됐어야 합니다. 저는 긴 세월을 많이 당했습니다. 특히 연예계 매스컴의 속성을 잘 알죠. 나는 '아'라 했는데 '어'로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멋대로 해라', 코는 코대로 간다는 경상도 말이 있죠.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고 나 아는 사람이나 친척도 '무슨 일이야',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지만 난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합니다. 할 수 없이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고 싶었던, 가다가 고아원도 가고 싶었고 이런 저런 생각 있었으나 포기하고 외국을 나갔습니다.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대학교인데 정규 학생 아니고 부대시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물론 간단한 테스트는 거쳐야 합니다. 숙제하면서 밤 새우면서,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 저한테는 쉽지 않았습니다. 밤 새우며 숙제하며 꿈을 가진 건 오래만이었고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프리젠테이션 때는 3일간 잠 못자고 준비했습니다. 저보다는 어린 교수였지만 제 별명을 '얼리 버드(early bird)', '일찍 일어나는 새'라고 지어줬죠. 날마다 제가 가장 일찍 와 있었습니다. 결국 그 학교 한국 학생 몇 사람이 하나둘 다니니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행동 반경이 또 어려워졌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 때는 대한민국 태극기가 내 등에 있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년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니고 들어왔죠. 들어왔더니 이제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부산 모 병원에서 후두암이 걸려서,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을 병에 걸렸다고. 아시는지요. 멀쩡한 사람을. 부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부터 부산 모 병원에 입원했다, 결과가 뭡니까. 제가 단언컨대 대한민국 공공장소에 3분 이상 서 있어서 거기 온 게 소문이 안 난다면. 제가 만약 병원에 입원했다면 틀림없이 어떤 경우든 저를 본 사람이 있을 테고. 다 압니다, 여러분들 꾼들이어서 기자들이 써 나가는 글귀를 보고 이거 냄새난다,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알 것입니다. 벌써 찾아가서 아니다, 못 봤다는데도 계속 나왔습니다.

말할 가치도 없고, 대꾸할 이유도 없는 거니까. 죽은 사람이 눈 뜨고 다니는 제가 이상해졌습니다. 여러분 다 읽고 나서 보면 별 거 아닌데, 제목에 나훈아 죽을 병, 암에 걸렸다, 부산에 입원. 성질 급한 사람은 위에 제목만 읽어 다른 사람한테 얘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래요 죽었다고. 나를 탁구대에 올려놓고 핑퐁 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것이죠.

그래서 떠났습니다. 카이로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데 몇 시간이 걸리느냐. 밤 비행기를 탔는데 마침 아슬람의 추석 같은 큰 날이어서 비행기에 사람이 별로 없었죠. 그런데 귀에서 피가 나고 코에서 피가 나고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감기에 스트레스였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며칠 만에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고 나았습니다. 건강하게. 암에 안 걸렸습니다.

어느 나라에는 사원인데, 시체를 태웁니다. 제 눈앞에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서 네 구의 시체가 타고 있었습니다. 맨 오른쪽 시체는 거지, 맨 왼쪽 시체는 상당히 부자 시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타는 모습은 똑같았습니다. 저는 움직이질, 일어서질 못하고 거기 앉아서 저는 남 앞에서 울 줄 모릅니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니. 그런데 그날은 가슴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코끝이 찡하더니 눈이 뜨거워지고 결국 수건까지 꺼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이죠. 저는 그날 가슴이 아팠지만 제 가슴에 꿈은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쓴 '혼' 가사 중 '살다 보면 알게 돼'가 있는데 그런 걸 보면서 가삿말을 쓰는 것이죠. 나라로 치면 14개국, 스물몇 군데 도시를 다녔습니다.

돌아와 보니 삼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것이죠. 야쿠자가 등장합니다, 지금부터 이 위에 올라가서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바지를 벗고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주세요.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단상에 올라 지퍼를 내렸다가 다시 내려와) 밑에가 잘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온 이유를 얘기하겠습니다. 제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후배 배우들이 황당무계하고 기가 막히고. 여러분 펜대로 사람 죽이는 것 아시는지요. 의지는 약하고 견디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면 이 두 여인은 자살까지 했을 겁니다. 여러분 펜대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연락한 게 (지난주)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때 뭐가 저를 힘들게 했냐면. 두 처자들이 아직 결혼 전입니다. 여러분도 모르는 남자친구가 있고 가족까지 만나는 사이라면 황당하겠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아마 그 집에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느냐'고. 우리 한국은 굴뚝도 없는데 연기를 피우는 곳입니다. 그러더니 '네가 처세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소리가 나오느냐'. 할 말 없습니다. 여러분 왜 둘이 나왔을까요. 하나도 아니고. '글래머 K모 배우'. 이게 사람 죽이는 거 모릅니까. 알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만이고 맞으면 한탕하는 것이죠.

연예인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많은 직업입니다. 뛰어서 정말 진실에 가까운 걸 얘기했어야 합니다. 애매모호하게 K로 거론되니 김혜수, 김선아라고 나온 것이죠. 이건 아닙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제가 '니 마음대로 해라, 놔두라'고 하기엔 이 처자들은 젊습니다. 제가 나서서 그나마도 구겨진, 엉망진창된 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봐. 지금껏 가만있다가 검찰이 내사에 들어가니 심리적 압박을 받아서 기자회견 한다는 말에 웃고 말겠습니다.

여러분 거의 다 얘기했습니다. 지금 나온 얘기들 다 했습니다. 여자로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니겠습니까. 나야 여러분 손에 만신창이 돼서 찢겨졌죠. 엉망진창입니다. 꿈도 없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김혜수, 김선아 후배 처자들을 바로잡아주세요. 꼭 바로잡아주세요. 바로잡아주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야 대한민국 연예계 언론이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오늘 나온 것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후유증은 기(사실)든 아니든 깁니다. 저는 이 후유증이 잠잠해지기까지 기다리기엔 머리가 많이 셌습니다. 이번에 많이 힘들 때 저를 믿는, 전국에 저를 사랑하는 모임들이 있습니다. 제가 꼭 체크를 합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아픈 것들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괜찮다 해도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이걸 채우기에는, 제 가슴에 꿈이 없으면 못합니다.

여러분들에 떼밀려서가 아니라 제가 못합니다. 제가 힘듭니다.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27. 09:09
 

위치나 길의 방향을 찾지 못하여 놀림을 당하고, 가끔 가이드를 하며 동행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갔던 길도 기억하지 못하기 다반사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러한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처음 낯선 고장을 갈 때는 바짝 긴장을 하여 운전이 끝나고 나면 몹시 피곤하다.

네비게이션이 구입 후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다.
이 또한 목적지를 가끔 돌아가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운전하는 것이 과거보다는 덜 염려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자동차 사이로 주차를 할 때는 초긴장을 한다. 백화점이나 공공장소를 가면 차가 없는 넓은 공간에 내 차를 주차 시키고 출입구까지 좀 멀더라도 걸어간다. 출입구 바로 앞에 세우면 좋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에 주차를 하지도 못한다.
앞으로 갔다 뒤로갔다 몇 번을 해야 모양새있게 주차가 된다.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오는 차때문에 후진을 할때는 초 긴장이다. 긁히고 긁은 적도 여러번 있어 정비소 신세를 지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증상은 내가 특별히 운동신경이 둔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위안을 삼고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보다 길을 잘못찾는 이유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캐나다 토론토대 체육보건학 룩 트렘블리(Tremblay)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여성이 길을 찾을 때는 주변 지형지물 등 시각적인 단서에 의존하기 쉬운 데 비해 남성은 지도와 동서남북 방위, 측정 거리 등에 의존한다.  귓속에서 해답을 찾는다. 움직임이나 속도, 방향감각을 느끼게 도와주는 '세반고리관' 크기가 남성이 여성보다 크다는 것. 남성 몸속에 고성능 나침반이 있다는 게 트렘블리 추론이다.

가끔 귀가 잘 안 들리는 느낌도 들었는데 그 것때문에 그런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런 증상인지 아니면 나만의 증상인지 귀 검사 하러 병원을 가보아야겠다. 눈에 보이는 길은 그렇다 쳐도 눈으로 보이지 않은 인생의 길은 어디로가야하는지 이 나이가 되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럴 경우는 귀검사로도 해결이 안될 것같다.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26. 16:56
화냥년과 호로 상놈의 시대는 가버렸다. 당연히 유전적 의미에서 후레자식도 사라졌다.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제 나라에서도 청(淸)은 힘을 잃어버렸다. 다만 욕은 왕이 무릎 꿇은 치욕적인 삼전도(三田渡) 굴욕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환향(還鄕)녀와 호로(胡虜)자식이 호란(胡亂)이 남긴 유산이라는 건 널리 아는 대로다.

욕설은 단지 상스럽고 천박한 비어(卑語)가 아니다. 욕설은 사회를 민중언어로 반영한다. 압축적으로 격변해온 한국 근대사는 욕 또한 창조를 거듭했다.

이마에 먹물 새기는 경칠 놈, 사지를 찢을 육시할(럴) 놈, 다섯 토막 낼 오살할 놈 등은 1894년 갑오경장 무렵 욕의 구체성이 소멸해 긴장감이 한결 떨어지게 되었다. 주리를 틀 놈은 비공식적으로 유지되어 1980년대까지 인권을 말살하는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명예형인 조리돌릴 놈은 5·16 쿠데타 직후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현수막 아래를 행진한 ‘동카포네’ 이정재 무리를 마지막으로 더는 선보이지 않았다. 오랏줄을 질 오라질은 포승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다 형벌에서 비롯된 욕설이다.

질병 또한 욕으로 몸을 바꿔 활개를 쳤다. 마마(천연두)는 떠났지만 ‘염병할’은 일상적으로 위력적이다. 마마와 달리 호열자(虎列刺)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낙들이 모여 시끄럽게 굴던 바가지 긁는 일은 여전하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는 듯한 고통을 주는 병’ 호열자는 1821년 처음 발병한 콜레라를 이른다.

‘엿 먹어라’는 남사당패들 사이의 비역질 은어다. 비역이란 궁둥이 쪽 사타구니 살이다. 엿이란 남자 성기다. 뺄 수 없는 욕은 성기를 넘어 근친상간에 관한 것이다. 가장 모욕적이면서 가장 널리 흔히 퍼붓고 있는 욕설이다. 욕먹는 사람만이 아니라 혈족 성분 자체를 능멸하여 가족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효율 좋은’ 욕이라고 하겠다. 가족중심 사회라서 욕스러움은 그만큼 더했다.

유월에 담아 육젖[白蝦]이라 부르는 새우를 오월 사리에 잡다 보니 섞인 잡것이라는 오사리잡놈, 팥을 넣고 지지는 부꾸미에서 나온 젬병[煎餠], 개가 먹는 밥 개차반[茶盤], 바(밥)보의 경우처럼 생활에서 나온 욕은 차라리 건강하다. 얼어 죽을, 굶어 죽을, 맞아 죽을, 쪽박 찰, 빌어먹을 놈 따위는 운명에 재앙과 불행이 일어나기를 비는 욕이다.

인도에서 건너와 욕말이 된 경우도 있다. 기악을 연주하고 향만 먹고 날아다니는 향신 건달파(香神 乾婆)에서 온 건달, 어리석게도 석가를 놀렸다는 조달(調達)이가 어원인 쪼다는 제법 유식한 축에 낀다고 하겠다.
20세기 욕설은 이들 중세사회상을 담은 욕보다 더욱 생생하게 한국인의 삶을 되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새겨볼 필요가 있다.

후레자식이 떠난 자리에 미군 튀기와 와이캡(Y-cab)이 들어섰다. 와이캡이란 한국 여자와 택시는 부르면 온다는 데서 나왔다. 미국에서 택시는 노란색(yellow cab)이다. 양공주는 양놈공주라는 자기 모멸적 비아냥이다. 월남에서 미군은 젊은 베트남 여자를 ‘사이공 티(Tea)’라 불렀다. 슬픈 이름이다. 꾹으로 눌러 있으라는 말은 미군이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 월남에서까지 사용했다. 꾹은 한국의 줄임이다. 참견이나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아부하는 일을 속되게 짜웅이라 하는데 이 또한 월남 사람들이 손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말 짜오옹을 파병 군인들이 듣고 와 자리 잡았다.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20세기 한국에는 주변 4대 강국 관련 욕이 제법 있다. 짱꼴라·쪽발이·로스케·양코쟁이 따위는 상대를 어떻게든 깎아내려 자기 존재를 증명코자 한 한국인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욕설은 언제든 논리보다 생동감이 있었다. 정작 그 말은 일본이 청일전쟁 뒤 중국 사람을 낮잡아 짱꼴라로, 로스케 또한 러일전쟁 무렵 그들이 만들어냈다. 북방에서는 러시아 사람을 마우재[毛子]라 했는데 이용악의 시에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울 어머닌/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 주셨지’라고 동경 어린 언어로 숨 쉬고 있다. 우라지오는 블라디보스토크다. 얼마우재는 이윽고 서양 사람을 흉내 내며 경망스럽게 구는 이를 일컫게 되었다. 미군을 양키라고 한 건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일본인을 얕잡는 쪽발이는 그네들이 두 갈래로 된 나막신을 즐겨 신는 데서 연유하고 있다. 친일밀정은 왜놈개라 했다. 역으로 일본에 규정 당한 게 조센징 등이다.
고문관이란 미군 고문관들이 한국 실정에 어두워 실수를 많이 한 데서 생겨 어수룩한 이를 뜻하게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진주한 미국 사람 이름을 개에게 붙여 쓴 일을 한국인의 놀라운 언어 규정력이라고 해야 할까. 메리·케리·쫑(John)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개를 사람 부르듯 하는 데서 배운 바도 있었겠다.

공무원을 정부미,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로 일컬은 건 권위주의 권력이 낳은 산물이다. 정부미는 양질이 아닌 묵은 쌀을, 바리는 바리데기에서 보듯 ‘버리다’에서, 짭새는 보통 새 사이에 섞여 있는 잡스러운 새(사복경찰)라고 하는데 유신시대 이전부터 짜부라고 불렀다. 이들과 가까웠던 깡패는 갱(gang)과 패의 합성어다. 아무래도 가장 무서운 욕은 ‘빨갱이 새끼’이겠다. 이는 욕을 뛰어넘어 살벌함을 품고 있다.

욕설은 지역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갯가에 산다는 뜻으로 호남인을 개땅쇠, 발음에서 깽깽이라 했다. 강원도를 감자바위, 충청도를 핫바지라 한 건 세련되지 못하다는 데서 왔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라는 어린이들 놀림에도 나오듯 서울을 뺀질이라 했다. 경상도 보리문둥이는 대체로 보리 먹으면서 글 읽는 아이[文童]라고 한다. 문둥이라면 경상도 사람이나 한센병 환자를 두루 깔보는 인권침해가 되는 말이다.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개똥녀, 된장녀 따위는 모던걸에서 보듯 여성비하와 소비책임을 전가하는 남성중심적 욕설의 전형이다. 근래 나온 ‘강북스럽다’는 소수가 다수를 업신여기는 일을 온당화하려는 그릇된 발상에 말미암고 있다.

욕설의 목적은 상대를 비하·저주하고,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지배자를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일상적 언어투쟁이다. 신성함을 해체해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도전이다. 20세기 한국 욕설은 외세·권위주의·차별 등 억압적 일상을 반영한다. 욕이 그저 상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욕설은 이렇듯 한국 사회와 사람의 역동성을 방증하고 있다.

글 서해성(소설가)

http://news.joins.com/article/3023543.html?ctg=1700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5. 12:1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http://www.subby.co.kr/194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2. 09:53
동영상이 유행하면서 해외나 국내나 출산에서부터 자라는 과정을 기록하여 올리는 것들이 많다. 특별한 영상 촬영 기술이나 편집 기술이 없어도 보기에 좋아보였다. 부모는 자식이 자라서 효도를 받으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선사하는 웃음과 행복감 그 자체가 효도라고 하던 글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다. 기실 동감했었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아기이지만 보면서 미소가 떠나지 않고 보고 또 봐도 즐겁다.

아무래도 내가 손주 볼 나이가 된 것은 사실인데
손주를 보려면 아직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하나..
다른 친구들은 이미 손주를 본 친구도 있다만서도.

그래서 오늘도 아기동영상을 기웃댄다.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꼬~^^ㅋ




부모들 숨넘어간다,
고 녀석, 꼭 연기하는것 같다.



외국은 저렇게 하고 자라나? ㅎ 저러다 안 다칠래나 모르겠네.
클립을 모았다가 이은 것같다.




외국의 아가가 브레이크댄스를 추면서 자란다면, 우리 아기들은 트로트 춤을 추면서 자라나? 어른들 웃음소리에 행복이 넘친다.어른들이 웃으니까 더욱 신이나서 춤을 추는 것이 이쁘기 짝이 없다. 귀저기까지 차고선.





먹는게 뭔지,
사는게 뭔지,
먹어야지, 졸립지,카메라도 쳐다봐야지,
인생은 고달퍼라..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8. 1. 1. 12:32


www.vimeo.com 외국사이트에 HDV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그곳 정보를 알고선 예전에 만든 24p모드로 찍은 영상을 올려보았다
속도가 느려서 애를 먹었으나 재미삼아 올린 것이다.

가입할 때 이메일 주소를 적었는데
댓글이 달리면 자동으로 이메일로 전해주길래 편하다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영어 공포증이 밀려온다.
링크를 따라 가보니 아니라 다를까 영어가 댓글에 달려있다.
다행이 중1정도의 영어수준인 내 실력으로도 간신히 이해를 하고
역시 중 1수준의 댓글을 달았다.

안쓰고 그냥 넘어가면 국가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혹시 철자가 틀리면 어쩌나, 콩글리시 실력 들통나면 어쩌나 등등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매일같이 댓글이 하나씩 달려
연말 아침에 메일박스 열기도 조마조마했다
한 줄메모처럼  답답형 댓글을 달고선 학교다닐 때 영어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인터넷이 국경이 없건만
이 이야기를 하니
지인들은 내가 한 행동을 보고 영상으로 국제무대에  진출했다고 놀려댄다.
아래는 거기 달려있는 현상을 캡춰한 것이다



Posted by @buza19
Golden WebTalk2007. 12. 31. 11:03

으례 년말이면 올랭자인이 넘쳐나고
이메일로 카드들이 오고간다
최근 하루 문자전송량이 6억통이라니 사람은 외롭고는 못사는 동물임을 실감한다.

정리하고픈 말도 많고, 새로 다짐하고픈 말도 많으나
마음 속에 담아 두고자 한다. 그 것 또한 연례행사였을 뿐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햇수가 도대체 몇 년인가.
년말 대차대조표는 조용하게 해 보련다.

어릴 때는 카드를 손으로 염심히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냈던 기억이난다. 성인되면서 무게감있는 분들에게는 소위 연하장 개념의 소나무가 그려지고 학이 날라가는 류의 값나가는 카드를 보냈었다. 그것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e- card로 대체되더니 이제는 핸드폰 문자로 많은 부분 바뀌어 버렸다. 그래도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직접 핸드폰으로 안부를 물어야 할 것같아 그 작업을 하는 중이다.

왠지,
올해는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카드에 대한 향수가 자꾸 떠오른다.
한복 곱게 차려입고 어린 아이들 대동하고 눈 쌇인 길을 걸어가는 여인네가 그려진 카드 말이다. 찾아보니 다행이 비스므리한게 나왔다. 엄마 가슴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다스해 진다. 유년시절에 대한 회귀현상 같다.

http://cafe.naver.com/mamj8836/10506

위의 주소로 가보니 카드가 많았다.
잠시 유년의 기억에서 헤메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보통 날이나 다름없는데
사람들은 이런 규칙을 만들어 부산을 떤다.
블로그가 썰렁할 것같아,
아니, 마음이 허전한 구석을
카드 하나로서 채워보았다




Posted by @buza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