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Literacy2007. 8. 5. 06:18
시대의 요구, ‘디지털 저널리즘’을 구현하자
뉴미디어는 경쟁 아닌 결합의 대상

#1. 최근 한국광고주협회가 발표한 인쇄매체 수용자조사 결과, 신문의 가구구독률은 지난 2001년 51.3%에서 올해 34.8%로 뚝 떨어졌다. 열독률도 같은 기간 69.0%에서 60.8%로 하락했다. 신문구독을 하지 않는 이유로 △TV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43%)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수 있어서(19.5%) 등이 주로 꼽혔다.

#2.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뉴스를 접하는 주요 매체로 인터넷(46.7%)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나스미디어의 조사결과로 신문은 6.9%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도 가구당 신문구독률은 지난 98년 65%에서 2004년 48%로, 98년 47.9%였던 지상파TV 시청률은 지난해 상반기 33.8%로 하락했다.

#3. 북한 핵 실험 등을 놓고 떠들썩했던 9~10월, 줄줄이 오보사태가 있었다. 지난달 24일 중국 언론의 어이없는 오보로 밝혀진‘농축우라늄 조선족 밀매업자 구속’은 서해를 건너면서 요란법석을 떨었다. 앞선 11일에는 일본 언론발 북한 2차 핵실험 보도가 받아쓰기에 여념 없는 국내 언론들의 대형 오보 사태를 야기했다. 앞선 달에는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담당관의 가상 에세이를 연합뉴스가 ‘사실’로 오독, 각 언론사들이 이를 대서특필하게 만드는 등 헛소동을 일으켰다.


미디어환경의 재편과 저널리즘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사례다. 과연 우리 시대의 미디어는 제구실을 하고 있는가. 저널리즘은 그렇다면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재정립되고 있는가. 시대 혹은 사회, 독자들과의 소통은 성공적인가. 사실 이 모든 질문은 여느 시대의 미디어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은 ‘위기’상황에서 저널리즘은커녕 생존조차 담보하지 못한다. 미디어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미디어환경 변화와 맞물린 저널리즘에 관한 성찰을 소홀히 한 대가다. 손석춘 한겨레 객원논설위원은 ‘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 한국 공론장의 위기와 전망'에서 이같이 설파했다.  "저널리스트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뒤틀려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를 한국사회의 중대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비단 신문사나 방송사의 위기만이 아니라 공론장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신뢰의 위기’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곧 저널리즘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과연 앞으로 더욱 가열 차게 변해갈 미디어환경과 어떻게 결합해야 할 것인가. 신뢰는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인터넷 미디어의 도약에서 배우기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과 창궐이 기성 미디어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다양한 조사결과에서 나오지만, 시소는 이미 기울었다. 신문 혹은 방송뉴스로 대변됐던 저널리즘은 온라인 혹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환경의 재편에 맞춘 재정립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살펴본 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의 하락은 신문이 여타 매체에 비해 제구실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대목이다. 앞선 시대 신문이 가졌던 위상은 다양한 이유로 추락했다. 신문 아닌 다른 매체의 접근성이 더 좋을 뿐더러 차별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신문을 볼 이유가 없는 시대다. 뉴스 소비 창구는 다양화됐으며 앞서 신문이 담당했던 역할은 인터넷이 대체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뉴미디어의 도약은 놀라웠다. 굳이 어떤 증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인터넷 미디어의 약진과 기성 미디어의 추락은 이미 ‘사실’이 됐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정서 불거진 이 같은 현상에는 여러 요인들이 섞여 있으나 가장 주요한 요인은 독자와의 ‘접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미디어환경의 변화에 맞춰 뉴스소비 형태를 바꾸고 뉴스콘텐츠의 흐름을 변화시켰다.

특히 그저 신문을 읽고, 방송을 보며 단순 뉴스소비에 머물던 독자들이 손을 놀리고 입을 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인터넷이 바꾼 자각이었다. 신문 등의 기성미디어에서 인터넷으로 서식지를 옮긴 독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했고 ‘프로슈머’로서 변신했다.

이에 미디어 생태계는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수동적인 수용자였던 독자가 기성미디어의 방향을 결정짓는 능동적인 주체가 됐다. 그러나 사실 이것에도 일말의 오해가 있다. 사실 많은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독자들의 목소리를 선별, 게재하는 방식 등을 통해 그것이 여론인양 몰아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터넷 미디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들은 기성미디어가 갖지 못한 인프라와 기성미디어가 자가당착에 빠져 소홀했던 독자와 ‘통’하고 있다. 아울러 끊임없이 고민하고 보조를 맞춘다.

독자들은 그래서 단순 뉴스 소비자가 아닌 미디어를 소유하게 됐다. 지금, 어떤 형태로든 독자에게 미디어는 속옷과 같은 존재다.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 뿐 아니라, (1인) 미디어도 건지는 시대다.

기성미디어는 이처럼 상호보완과 개방을 통해 독자들과 ‘너나 모두 미디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뉴미디어가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뉴미디어에 조응하는 콘텐츠 기획은 수많은 세헤라자데와의 대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천일야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법이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기반은 독자와의 소통에서 나온다.  

불신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미디어환경의 차이 등으로 직접 비교는 힘드나 가까운 일본에서 신문의 위상을 보자. 최근 요미우리신문의 ‘신문 신뢰도 조사’에서 ‘신문을 크게 신뢰할 수 있다’가 24.0%, ‘대체로 믿을 수 있다’는 응답이 65.5%였다. 두 응답을 합하면 90%에 육박한다. 지난해보다 4%가 높아진 수치다. 일본 사회의 구심점으로서 신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지금-여기의 신문은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심한 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신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파적이고 상업주의에 찌든 신문을 보는 일은 고역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신문에서 정보를 얻는다’거나 ‘신문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는 말은 이제 생뚱맞다. 사회적 난제나 위기가 생겼을 때, 언론은 해결책은커녕 갈등만 부추긴다.

현재의 저널리즘은 그래서 명백하게 위기다. 특히 신문과 방송과 같은 기성 미디어를 향한 불신은 심각하다. 앞서 언급한 북핵과 관련한 오보사례만 봐도 그렇다. 북핵이 각 언론의 촉수를 예민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사태의 엄중함에 비해 언론의 처신은 너무도 가볍다. 불신은 한 순간이지만, 신뢰 회복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성미디어는 아직 인터넷 등의 뉴미디어에 친화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때론 뉴미디어 속도에 맞추고자 저널리즘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아이러니컬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플랫폼에서건 콘텐츠가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종이신문에 적용된 가치는 인터넷, 모바일, DMB 등 어떤 플랫폼에서건 일관되게 유지하되 접점 지점에서는 차이를 둬야 한다.

뉴미디어는 경쟁이 아닌 결합의 대상이자 미래상

향후 ‘뉴미디어’라는 테두리의 변화는 지속될 것이다. 인터넷의 인프라 정비에 아울러 디지털방송, IP-TV 등 새 플랫폼과 동영상 등의 콘텐츠가 미디어환경의 진화를 유도할 것이다. 이에 따른 뉴스 소비의 형태도 바뀐다. 기성미디어의 생존은 이 같은 환경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가능하다.

이제 단순히 신문과 방송은 단순 콘텐츠 전달의 플랫폼으로서만 기능해선 안 된다. 타성에 젖은 뉴스전달과 정형화된 패턴의 정보제공은 독자를 기만하는 처사다.

그렇다고 신문과 방송을 버리고 뉴미디어에만 총력을 기울이란 얘기는 아니다. 신문 혹은 방송의 변신은 무죄다. 신문, 방송에서 활용하고 응용할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크로스 미디어(Cross-media)’를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여기’의 미디어기업은 종합콘텐츠기업을 지향하면서 뉴미디어와 친화해야 한다. 콘텐츠는 생존을 위한 총알이다. 이를 장착할 수 있는 무기(플랫폼)는 다양화해야 한다. 인터넷은 그 다양화의 시발이다. DMB, 와이브로, IP-TV, 디지털방송 등에 들어설 수 있는 첫 관문이다. 인터넷에서 실험은 시작돼야 한다. 디지털스토리텔링과 같은 콘텐츠의 다양한 실험은 물론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콘텐츠 자산관리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서 기술투자 역시 소홀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전사적인 적응 노력과 내부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최진순 한경미디어연구소 기자는 “일관된 혁신과 개조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신문기업일수록 기자들의 창의성이 무르익어 있다”며 “뉴미디어 투자 이전에 신문 내부의 낡은 구조와 문화를 깨지 않으면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미디어기업으로서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즉자적인 대응이 아닌 구조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기성미디어는 ‘디지털’로 대변되는 뉴미디어와 경쟁 구도를 꾸리지 말고 손을 잡아야 한다. 사람, 조직, 자원의 혁신과 마인드의 변화를 유도하면서 새롭게 대두된 ‘디지털 저널리즘’을 짜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자들도 단순히 기사 생산만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전략적인 구현을 위한 ‘콘텐츠 아티스트’혹은 ‘콘텐츠 코디네이터’가 돼야 한다.  



http://www.onlinemedianews.co.kr/zb/view.php?id=colum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32
Posted by @buza19